가나가와현 제11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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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 [편집]
가나가와현의 미우라 반도 지역 대부분[1]을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.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내각총리대신의 차남인 자유민주당 소속 고이즈미 신지로다.
2. 상세 [편집]
다른 선거구들처럼 자유민주당 성향이 강하지만, 이 선거구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前 총리 일가가 중선거구제 시절부터 4대에 걸쳐서 세습한 선거구라는 점이다. 고이즈미 마타지로-고이즈미 준야-고이즈미 준이치로-고이즈미 신지로의 중의원 임기 년도를 합치면 1908년부터 지금까지 121년 동안 고이즈미 가문의 지반인 선거구이다. 고이즈미 가문이 아닌 사람이 이 선거구의 의원이었던 경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첫출마를 하여 낙선한 3년 정도밖에 없고, 그마저도 다음 선거에서는 중의원에 입성했다. 다만 중선거구제 였을때 당시에는 해당 선거구가 포함된 가나가와 2구가 자민당 약세지역인지라[2] 고이즈미 준이치로도 상술했듯 처음 선거에서 낙선하는 쓴 경험을 해봤고 늘 압도적으로 선거에 당선된 것은 아니니 국회의원직을 거저 지낸 건 아니기는 하다. 그러나 소선거구제로 선거제도가 개편되어 분구된 이후로는 압도적인 자민당 텃밭으로 등극했다.
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지역구가 이 선거구였으며,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계은퇴 이후에는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지역구를 물려받았다. 그 영향 때문인지 신지로가 첫 출마 할 때를 제외하고 선거 때마다 득표율을 70% 넘게 기록하는 등 지역구에서의 지지 기반이 강력하다. 특히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는 신지로가 자기 지역구 유세는 한 두번 정도만 하고 다른 지역구 유세를 돌았는데도, 득표율 78%를 기록했다.
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지역구가 이 선거구였으며,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정계은퇴 이후에는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지역구를 물려받았다. 그 영향 때문인지 신지로가 첫 출마 할 때를 제외하고 선거 때마다 득표율을 70% 넘게 기록하는 등 지역구에서의 지지 기반이 강력하다. 특히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는 신지로가 자기 지역구 유세는 한 두번 정도만 하고 다른 지역구 유세를 돌았는데도, 득표율 78%를 기록했다.
3. 역대 국회의원 [편집]
선거 | 연도 | 의원명 | 소속정당 |
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| |||
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| |||
4. 역대 선거 결과 [편집]
4.1.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[편집]
가나가와현 제11구 요코스카시, 미우라시 | |||||
이름 | 소속정당 | 득표수 (득표율) | 순위 | 당선 여부 | 비고 |
고이즈미 신지로 (小泉進次郎) | 154,761 (78.0%) | 1위 | 당선 | ||
세토 가즈히로 (瀬戸和弘) | 21,874 (11.0%) | 2위 | 낙선 | ||
마시로 료 (真白リョウ) | 18,583 (9.4%) | 3위 | 낙선 | ||
아쿠쓰 다카유키 (圷孝行) | 노동 해방을 목표로 하는 노동자당 | 3,133 (1.6%) | 4위 | 낙선 | |
계 | 선거인 수 | 386,677 | 투표율 52.11% | ||
고이즈미 신지로가 무려 78%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. 이 당시 신지로는 선거기간 동안 자기 지역구 유세는 한 두번 정도만 하고 다른 지역구 지원 유세를 뛰었는데도, 넘사벽 득표율을 보이며 탄탄한 지역 기반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.
당선이 확정된 후 연설하는 고이즈미 신지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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